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12)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부끄러운 일을 조심스레 고백할 용기도 있어야 했고, 자랑거리를 능청스레 늘어놓을 뻔뻔함도 갖춰야 했으며, 지루한 말들을 고집스레 이어나갈 끈기도 필요했다. 고작 1년 10개월. 전맹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떤 커다란 깨달음이나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얻기엔 보잘것 없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변화를 맞닥뜨리고는 그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10)“친구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으니까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세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아. 재혁이 네가 내 친구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겠지. 이젠 지하철에서 도움이 필요한 시각장애인 분들을 마주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전맹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을 만나면 종종 듣는 소리다. 누구나 제 인생을 살다 보면 다른 이의 삶은 들여다볼 겨를이 없어진다. 그러다 가까운 사람 중 큰 변화를 맞닥뜨린 사람이 생기거나 본인이 그런 상황이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기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9)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 나는 돈과 시간만 생기면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고민하곤 했다. 여행을 떠나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도 있었고,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술을 마시며 식견을 넓힐 수도 있었다. 특히 숭고한 자연의 신비로움을 직접 목격하는 짜릿함은 실로 대단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의 여권에는 18개 나라의 각기 다른 도장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전맹이 된 후에는 여행을 떠나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8)“카톡!”작년 11월 초 처음 보는 이름의 낯선 이에게서 뜬금없는 메시지가 왔다. 13년 전 스무 살이던 우리가 강남의 한 재수학원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고, 종강 후에도 종종 나의 소식을 궁금해하다가 우연히 SNS를 통해 연락처를 알게 되어 용기를 내 문자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M에 대해 물었더니 특별히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고,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었던 걸로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7)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참 대단한 행운아다. 사지가 멀쩡해도 살아가기 버거운 삶을 장애까지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내게 너무 걱정 말라며 짐을 나눠 들겠노라 흔쾌히 나서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일어서 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을 수는 없었을 테다. 무릇 가까운 사이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해받지 못해 상처가 깊은 장애인들을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있다.작년 봄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6)혼자 활동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들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다. 나이 지긋한 장년의 여성일 수도, 풋풋한 얼굴의 20대 청년 남성일 수도 있다. 바로 장애인 활동 지원사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가족이나 자원봉사자로 지레짐작하지 말자. 장기 요양 보험 제도와 마찬가지로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 역시 정부에서 관리하고 지원하는 사업이지만, 요양 보호사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갖가지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5)“재혁아! 오랜만에 춤 한번 추러 가자.”“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런 데 가도 괜찮을까?”“우리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일단 나와!”오랜 친구 녀석에게 같이 클럽에 놀러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전맹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 잠시 망설였다. ‘그래, 안 보인다고 춤 못 추는 것도 아니고. 나라고 클럽에 못 갈 게 뭐 있어.’ 혼잣말을 중얼대며 마음을 굳혔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기에 더 안심할 수 있었다. 2022년 6월 17일 금요일 저녁, 우리 셋은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4)완전히 볼 수 없게 되니 당장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중년의 시각장애인 여성이 나와 같은 미용실에 다닌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분은 시각장애인에게 중요한 여러 정보들을 두루 알고 계셨다.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했더니,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무엇보다 한시라도 빨리 복지관에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기초재활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알아보니 서울에는 다섯 곳의 시각장애인복지관이 있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3)앞에 쓴 두 편의 글에서 장애인이 된 내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이 글에서는 시각장애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대개 초점을 잃은 눈에 손을 더듬거리거나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흰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걷는 모습을 떠올릴 테다. 사실 시각장애인 중에 책을 읽거나 당구를 치는 사람도 있고, 운전을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장애의 정도는 다양하다. 얼마 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듯, 시각 장애 스펙트럼도 넓다.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삶 도전 이야기(2)나는 노을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비슷한 가을도 사랑했다. 하루의 시간이 그리고 1년이라는 세월이 꽤 흘러갔음을 직관적으로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처없이 흐르는 시간이 주는 그 쓸쓸함, 처연함이 좋았다.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도 좋았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며 붉은 색으로 하늘을 칠하거나 나뭇잎이 울긋불긋해지며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걸 보면서 저건 자연이 주는 숭고한 선물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런데 참 운명이 야속했다. 전맹
전맹 시각 장애인이 된 최재혁의 새로운 도전 이야기(1)전맹 시각장애인으로 산 지도 벌써 1년 반이 되어간다. 그동안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희망을 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였다. 시력을 모두 잃은 사람이 얼마나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또 어떤 점에서 인간과 삶,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는지 몇 회에 걸쳐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놓고 싶다. 내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들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2021년 7월, 희미한 빛 한 자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