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4월말이다. 5월이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은방울꽃. 연초록 두 장 이파리 사이로 올라온 꽃대에 하얀 종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수줍어 고개를 숙인 여인네의 하얀 볼 같다고나 할까. 꽃을 보고 있노라면 숲속 어디선가 맑고 선명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은방울꽃. 참 꽃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은방울꽃은 세계적인 명품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이 사랑했던 꽃이다. 그는 은방울꽃향기에 매료되어 1950년대 향수를 만들었다. 이후 지금까지 향수 업계의 스테디셀러다. 강하지않고 은은한 향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듯하다
3월 새봄이다. 봄바람이 간질간질 코끝을 스친다. 복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방망이질 친다. 이른 봄 햇살 좋은 양지에 솜털 보송보송한 앙증맞은 노루귀를 만날 수 있다.노루귀꽃은 꽃이 피고 난 뒤에 잎이 나오는데, 잎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 둥그렇게 말리면서 하얀 솜털이 있는 모습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노루귀는 파설초(破雪草) 또는 설할초(雪割草)란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른 봄 눈을 뚫고 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루귀꽃은 눈 속에 피는 봄의 전령사다.우리나라 식물 가운데 앞에
세계적으로 1속 1종 밖에 없는 대한민국특산 희귀식물 미선나무.미선나무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 충북 진천에서 한국 식물학의 개척자인 정태현 박사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2년 뒤인 일본 식물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에 의해 학계에 보고되면서 학명이 ‘Abeliophyllum disdichum Nakai’가 되었다. 학명에 자기이름(나카이)을 붙인 것이다. 미선나무의 학명을 가로챈 것이다. 봄에 피는 미선나무꽃에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다.나카이는 미선나무를 일본 이름인 ‘부채나무’로 부르기를 바랬으나 한국 식물학자들은 19
Pulsatilla tongkangensis동강할미꽃. 학명에 동강(tongkangensis)이라는 지명이 버젓하게 들어가 있다.동강할미꽃은 할미꽃의 일반적 특징을 거부한다.동강 할미꽃은 전세계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 평창, 정선, 삼척 등 강원 남부 석회암 지대에서만 서식하는 한국특산식물이다.보통 할미꽃은 허리를 굽어 피어나는데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뻣뻣하게세우고 피어난다. 할미꽃 가운데 지존이다.굽이치는 동강에 봄기운이 완연할 무렵 척박한 석회암 뼝대(바위절벽)에서 온몸으로 물기를 뿜어 올려 꽃을 피워낸다.영양분이라고
햇살 좋은 봄날 툇마루에 앉아참빗으로 은백색의 긴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던 할머니.구부정한 허리에 눈부시게 빛나는 백발이 눈에 잡힐 듯하다.하얀 솜털이 온몸을 덮은 채 꽃을 피울 때부터 허리가 굽은 할미꽃.꼭 할머니를 닮았다.할미꽃의 꽃말은 ‘슬픈추억’ ‘공경’이다.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무릎 위에서 재롱을 피우던 손자는 이제 반백이다.어른을 공경하는 것...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그래서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나 보다.할미꽃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손녀 셋을 남겨두고 아들 며느리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할머니는 셋을 애지중지 키
눈이 호강한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인가 보다.주변의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릴 것 같은 가녀린 꽃대가 밀어 올린 보라색 꽃잎. 우아한 자태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새침데기다.깽깽이풀꽃.어째 이렇게 우아하고 도도한 새침데기에게 깽깽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이름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해금을 깽깽이라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바쁜 농사철 해금을 켜고 놀자고 유혹하는 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강아지가 ‘깽깽’거리는 소리 같아서 그렇다고도 이야기하는 설도 있다.약으로 먹으면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주 쓴맛이 난다고
수많은 우리꽃 가운데 '비로'라는 말이 들어가는 꽃은 ‘비로용담’이 유일하다.꽃은 7월에서 9월 사이에 만날 수 있다. 자주색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비취빛에 가까운 영롱한 하늘빛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비로용담의 꽃말은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이다.시인 복효근은 꽃말인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로 비로용담을 노래했다.내가 꽃 피는 일이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꽃은 피어 무엇하리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비로용담을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의 대암산 용늪에서 만날 수 있다.대암산 용늪은 1997년 국내
활량나물. Lathyrus davidii이름이 낯설다. 하지만 전국의 산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다년생 초본이다.애기완두에 비해 크다고 활량(闊良)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활량나물은 어린 순이 올라오는 모습이 닭 볏 같다고 달구벼슬, 활을 넣는 통 같아 활장대, 또는 콩대라고도 부른다. 꽃이 피면 나비를 닮아서 또는 잎이 마주나는 모양이 나비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 나비나물이다.활량나물 꽃이름이 참 예쁘다. ‘요정의 장화’꽃이 피면 마치 장화를 걸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숲 속의 요정이 한여름에 돌아다니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설 무렵인 9월.물감으로 칠한 듯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빛 별들이 반짝인다.큰꿩의비름 이 그 주인공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꽃들이 별처럼 모여 있다.입맛이 없을 때 무쳐먹는 돌나물과 꿩의비름속이다. 분홍빛 꽃들이 뭉쳐있는 모습이 꿩의 벼슬처럼 붉어서 붙여진 이름일까. 큰꿩의비름은 생명력이 대단하다. 줄기 하나만 꺾어 꽂아도 줄기에서 뿌리가 나면서 스스로 살아난다. 이런 끈질긴 생명력 때문인지 큰꿩의비름의 꽃말은 희망, 생명이다.글 / 최순호기자 choisgood@oknews.new
서(鼠)생원의 방울은 얼마나 클까.7-8월 녹자색 잎겨드랑이에서 자라나와 나팔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쥐방울덩굴(Aristolochia contorta BUNGE.)열매가 작은 방울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나비를 좋아하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국민 나비로 대접받고 있는 ‘국접(國蝶)’이 꼬리명주나비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는 쥐방울덩굴만을 먹고 자란다. 멸종위기 자생종인 꼬리명주나비를 복원하기 위해 천변에 쥐방울덩굴을 많이 심고 있다.녹색의 잎을 살짝 들치면 그 아래 쥐방울덩굴꽃을 만날 수 있다.쥐방울덩굴의 꽃말은 ‘외로움“이다.글: 최
한계령을 떠올리면 가수 신형원의 ‘터’라는 노래가 생각난다.저 산맥은 말도없이 5천년을살았네모진바람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저 강물은 말도없이 5천년을 흘렀네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설악산을 휘휘돌아 동해로 접어드니아름다운 이 강산은 동방의 하얀나라동해바다 큰태양은 우리의 희망이라이 내 몸이 태어난 나라 온누리에 빛나라....봄에 피는 야생화 가운데 설악산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이 있다. 한계령풀은 주로 우리나라 중부 이북지방의 고산 지역에서 자라는데, 양지 바르고 물빠짐이 좋은 곳에
노란 성게 같기도 하고 산수유꽃 같기도 한데 자세히 보면색종이를 잘게 썰어 가지에 묶어놓은 것 같다.도시적 감성으로 말하면 문서파쇄기에서 나온 종이가가지 끝에서 나풀거리는 것 같다.봄을 맞이하는 꽃이라 하여 영춘화(迎春花)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잎이 나기 전, 2~3월에 꽃이 먼저 핀다.이른 봄 농부들은 이 꽃을 보며 1년 농사를 소망했다. 꽃들이 탐스럽게 잘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풍년화다.중국에서는 금루매(金鏤梅)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원산지인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열매는 10월에 익으며, 종자
세 개의 가지가 갈라진 끝에 노란 팝콘을 피워낸 삼지(三枝)닥나무.매화꽃과 함께 봄을 전하는 꽃이다. 봄은 부지런하다.몸을 움츠리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어느새 꽃을 피워냈다.봄이어서 꽃이 피는 것인지, 꽃이 피어 봄인지 모르겠으나 삼지닥나무 한 가득 노란 팝콘이 열렸다.나무껍질이 고급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는 닥나무다.‘삼지닥나무’는 호아서향, 삼아목, 삼지목, 삼지닥, 황서향나무라고 부른다.영문 이름은 Oriental paper bush. 꽃말은 ‘당신을 맞이합니다’.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노란 팝콘을 같이 나눌
바람이 분다.대통령 선거 바람코로나 바람우크라이나 전쟁 바람.....눈 코 뜰 새 없이 바람이 분다그 가운데 반가운 바람은서해 바다 변산에서 불어오는 꽃바람이다. 변산바람꽃.전북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돼 붙여진 이름이다.변산에서 처음 발견 된 후 전국 곳곳에서 변산바람꽃이 관찰되고 있다. 변산바람꽃은 다른 바람꽃과 달리 연두색 암술, 연한 보라색 수술, 초록색 깔때기 모양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피는 너도바람꽃과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구조와 꽃색이 다르다. 변산바람꽃이 피었으면 봄이 코 앞까지 온 것이다.코로나가 절정을 향해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에서 시인 이장희(李章熙 1900-1929)는“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라며금방울 같은 고양이의 눈에 봄이 불길처럼 흐르는 것을 노래했다. 나른한 봄날 튓마루에 앉아 노란 눈망울로 햇살을 즐기는 귀여운 고양이가 눈에 선하다.이런 고양이 눈을 닮은 꽃이 있으니 ‘괭이눈“이라는 꽃이다.꽃을 둘러싼 녹색 잎이 꽃과 같은 노란색으로 물들면서 작은 꽃이 큰 꽃처럼 보인다.곤충의 눈에 잘 띄어 꽃가루받이를 쉽게 하기 위한 자연의 지혜다.꽃가루받이가 끝나면 노란색으로 물들었던
입춘이 지나 봄바람이 불면 얼었던 땅에 생명이 깃드는 것인지 얼었던 땅에 생명이 깃들면 봄바람이 부는 것인지 가냘픈 꽃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아 봄이로구나.봄은 제주도 저 아랫녘 이어도에서 오는 것일까. 계곡마다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다. 겨울이 가고 봄의 길목에 피는 꽃이어서 절분초라 부르는 바람꽃은 바람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하다.바이칼바람꽃, 만주바람꽃, 태백바람꽃, 변산바람꽃, 가래바람꽃, 꿩의바람꽃, 쌍동바람꽃, 외대바람꽃, 풍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남방바람꽃,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너도 나도 봄바람을 타고 전
눈 속에 피어 더 아름다운 매화 꽃 설중매.겨울을 자처하는 눈과 봄의 전령사인 꽃이 한데 어우러져야만 제 맛이 나는 설중매.겨울과 봄 사이 둘은 극적으로 만나 새로운 세상을 빚어낸다. 세상엔 극과 극이 만나 파멸을 맞이할 것 같지만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설중매는 세상의 모든 식물들이 겨울의 찬바람 앞에 숨을 죽이고 살아낼 때 몰아치는 한파(寒波)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 속에서 꽃을 피워낸다. 시련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오기가 생겨 더 강해지는 것일까.은은한 매화 향기는 더 매혹적이다. 깊은 산 속에 피는 매
이른 봄 얼음장 밑으로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에서 하얀 별들이 내려앉아 햇볕을 쬐는 환상적인 장면을 만날 수 있다.모데미풀꽃이다.모데미풀은 한국 특산식물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 땅에서만 유일하게 자라는 고유종이라는 뜻이다. 영어명도 우리이름 그대로 ‘Modemipul’이다학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식물로 소나무, 진달래를 제치고 단연 이름도 생소한 모데미풀을 꼽는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오이자사부로라는 일본학자가 지리산 일대에서 답사를 하다 전북 남원군 운봉면 모데미 마을에서 처음 발견해 모데미풀이라 이름붙였다고
봄날 작은 야생화를 만나기 위해 땅만 쳐다보는 것에 열중하다 보면 머리 위에 피어 놓치기 쉬운 꽃이 있다.분홍색 드레스에 빨간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를 연상케 하는 올괴불나무꽃이다.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피우는 아주 작은 꽃이라 지나치기 십상이다.꽃이 워낙 작아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려면 힘든데 작은 바람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사진으로 담기 쉽지 않은 꽃이다. 괴불나무는 종류가 많은 편이다. 각시괴불나무, 청괴불나무, 왕괴불나무, 분홍괴불나무, 흰괴불나무, 홍괴불나무, 섬괴불나무... 그 가운데 올괴불나무는 다른 괴불나무들 보다 꽃을
앙상한 가지 사이로 쉼 없이 몰아치는 삭풍을 이겨내고 고개를 내미는 겨울눈에서우리는 봄을 본다.삭풍 끝에 온기가 묻어 골짜기를 훑을 즈음 물 오른 가지 끝에 수많은 노란 별들이 핀다.생강나무다.이른 봄 노란 꽃망울을 터트려 봄을 가장 먼저 전하는 생강나무. 나무줄기를 문질러 코에 대면 알싸한 생강 향이 은은하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