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월 끝자락. 이제 화사하게 생동하던 봄꽃 잔치는 끝났다. 노란 산수유, 생강나무에 이어 매화, 개나리, 진달래까지 정신없이 피어대던 봄꽃 잔치는 끝났다. ‘봄’은 볼 것이 많을 때여서 ‘봄’이라 했다. 화사한 봄꽃 잔칫상에서도 조팝나무, 이팝나무, 박태기나무를 보면 애잔한 생각이 앞선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시절이 되었지만, 조선 500년, 일제 강점기, 6.25까지 폐허 속에서 늘 굶주림에 허덕이어야 했던 우리네 어버이들이 생각난다. 지난가을 수확했던 곡식은 떨어지고, 햇보리가 나오기 전까지 온 산과 들을 헤매
가수 김창완이 방송에 출연해서 서울대 출신이라 말했다. 전공이 잠사학과란다. 듣는 순간 잠사학과? 갸우뚱했다. 김창완이 졸업한 서울대 잠사학과는 농과대에 속해 누에를 길러 실크 원단과 실을 만들고 연구하는 학과였다. 국어사전에는 ‘잠사-누에치는일’로 나와 있다. 잠사학과는 1956년 7월에 신설돼 1990년 1월 천연섬유 학과로 명칭이 변경됐다. 현재 바이오소재학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뽕나무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희대 안진흥 교수는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이야기”에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2024년 푸른 용의 해가 밝았다. 1월 1일 0시 새해를 맞으러 종로 보신각 주변에는 10만 인파가 모였다. TV에 비친 얼굴마다 설렘과 새로운 희망이 가득해 보인다. 가는 해를 뒤로하고, 오는 해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희망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희망을 갖기 때문이리라. 가끔 하루 사이에 바뀐 세상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해가 바뀌는 것은 희망이 있어서 좋지만,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세상을 보는 맛은 행복감이다. 지난 12월 30일, 한해 마무리에 분주했던 날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다. 아이들은
“나무는 무엇이든지 되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위로, 치유, 영감 때로는 지식이기도 해요” 이유미 원장(국립 세종수목원)이 방송에서 한 말이다. 예전에는 막연히 들리던 말이 이즈음은 이해가 간다. 마음이 불편한 날은 숲길을 산책하고, 나무들이 살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삶도 추스른다. 또 나무를 통해 역사를 다시 읽기도 한다.지난 11월 11일, 회화나무 한그루가 보고 싶어 창경궁으로 향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아픈 날 중 하루를 지켜보던 나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 38년(1762) 윤5월 21
아파트 단지에 가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 나무는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대왕참나무다. 이어서 느티나무 벚나무 은행나무까지 노랗고 붉게 단지를 뒤덮는 중이다. 대왕참나무가 이 땅에 들어온 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받아온 화분속 나무로 알려져 있다. 당시 1위 손기정, 2위 영국의 하퍼, 3위 남승룡 선수였다. 시상식 사진에 손기정 선수는 월계관을 쓰고 가슴에 화분을 들고 있다. 시상대에 오른 두 조선인은 고개를 숙인채 침통한 표정이다. 손기정은 그의 회고록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202
2022년, 나는 68세 나이에 숲 해설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근무처는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이하 김포생태공원)으로 9시에서 6시까지 상근직이다. 공원의 이름이 길어 한 번에 부르기도 힘들었다. 김포 생태공원은 한강하구에 조성되었고, 면적은 66만 제곱미터로 상암 종합경기장 11개 넓이다.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지역으로 아파트가 들어섰다면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터이지만, 야생조류 터전으로 보존되었다. 한강하구는 큰기러기, 쇠기러기가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3,000여km를 날아와 겨울을 나는 곳이다.기러기는 가족 친지가 2
교육을 마치고 숲 해설가 자격증은 땄지만, 코로나 상황 속에서 활동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 기간이었던 2021년은 친지들도 5명 이상은 모일 수가 없었으니 해설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마침 고양생태공원에서 숲 해설가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활동은 주 1회 고양 생태공원에서 목본, 초본, 곤충 등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일이다. 자원봉사인 만큼 수고비는 거의 없지만 주어진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숲 해설사 자격증을 땄지만,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는 막 걸음마를 뗀 정도다. 고양생태공원에서 함께 모니터링을 하는 10명의 선생님은 대부분 해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속에 하얀 배추흰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간다. 날개에 검은 점 하나가 선명하여 쉽게 구분되는 나비다. 빗줄기를 피한 나비는 어디로 갈까? 얼핏, 장마철에도 노란 꽃을 활짝 피우는 모감주나무가 생각난다. 14일 일산 호수공원 찾아가 모감주 나무를 만나봤다. 꽃들이 별로 없는 시기에 화사한 꽃을 피우는 것은 모감주나무의 삶의 전략일 것이다. 장마철에도 잠시 비가 그치기도 하고 또 반짝 해가 나기도 한다. 햇빛이 반짝이는 짧은 시간에 곤충들은 촌음을 아끼며 왕성히 움직인다. 모감주나무는 꽃은 작지만, 덩어리로 피고 꿀이
하늘보다 더 높이 오르려 애쓰는 나무가 있다. 능소화(凌霄花), 중국이 고향인 꽃으로 능가할 ‘능’, 하늘 ‘소’, 하늘을 능가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꽃나무는 제 몸을 똑바로 세울 조직도 없는 덩굴식물로서 주택가 담장이나 바위벽, 죽은 나무, 산 나무를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오른다. 가끔 고목 나무를 타고 오른 능소화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은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나팔 모양의 이 꽃을 서양에서는 차이니스 트럼펫 크리퍼 (chinese trumpet creeper)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능소화는 ‘양반
생명체들이 살아가기 힘든 극한 지역, 사막이나 황무지의 주인은 선인장이다. 그들은 극한상황에서 살아가기 위해 제일 먼저 잎을 가시로 변화시켰다. 가시는 잎과 달리 증발에 의한 수분 손실이 없다. 또한 밤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모으고, 낮에는 기공을 닫은 채 광합성을 한다. 햇볕에 의한 수분 손실을 막으려는 조치다. 촘촘한 가시들은 초식동물로부터 선인장을 보호하고 그늘을 만들어준다. 선인장의 원산지는 남·북아메리카 대륙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아메리카의 선인장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대륙 간을 오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 등 노란색 꽃으로 가득했던 봄날이 지나간다. 나뭇잎의 초록이 짙어지며 꽃들의 색도 바뀌었다, 바람결에 날려오는 향긋한 향기의 아카시꽃 부터, 배고팠던 시절 하얀 쌀밥처럼 보였다는 이팝나무, 흰나비들이 무더기로 내려앉은 듯한 산딸나무, 산사나무, 층층나무 등 하얀 꽃들이 이제는 숲의 주인이다. 숲속에 사는 나무 중에서는 한눈에 설핏 안 들어올 정도로 조용히 꽃을 피운 나무도 있다.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하얀 꽃을 피운 때죽나무다. 지난 18일 고양시 일산 대아마을에서 만난 때죽나무. 손톱만 한 하얀 꽃이
‘살찐 황소 4마리, 돼지 8마리, 양 12마리, 포도주 2드럼, 치즈 500kg, 버터 160kg, 밀과 호밀 각각 1포대, 장롱 하나에 가득 찬 옷가지, 은컵 1개’. 1634년 네덜란드에서 튤립 한뿌리로 살 수 있었던 물건 목록이다. 각각의 목록과 튤립 한뿌리로 대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튤립 한뿌리면 목록 전체를 살 수 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의 1년 수입은 300길더 정도였다. 튤립의 인기 품종인 가우더, 황제, 총독 튤립 등은 3,000길더가 넘게 거래되었다. 근로자가 한푼도 안쓰고 10년을 모으면 튤립 한뿌리를
가던 걸음도 멈추게 하는 진한 향기를 지닌 꽃, 라일락(lilac)이다. 4월이면 동네 주변에서 보라색과 흰색 라일락을 종종 만난다. 유럽 남동부 지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조선말에 들어왔다. 라일락의 사촌쯤 되는 우리나라 자생종은 ‘수수꽃다리’로 불러왔다. 수수꽃다리란 이름은 수수 이삭 뭉치같이 뭉쳐서 핀다고 얻었다.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은 쉽게 구분이 어려워 요즘은 모두 라일락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 땅에서 자라던 아름다운 수수꽃다리가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김 라일락’이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미군정(1945.8.15.
꽃은 피는 순서가 있다. 특히 한해가 시작되는 봄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날짜를 꼽아 기다린다. 남녘에서 매화가 피면 노란 산수유가 뒤를 잇고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세상을 덮은 뒤 철쭉이 피면서 봄날이 간다. 옛말에는 봄꽃이 순서대로 핀다고 춘서(春序)라고 했다. 올해는 춘서가 무너졌다. 진달래 보러 나서는 길에도 개나리꽃이 피어 있고, 벚꽃도 활짝 피었다. 봄꽃이 한꺼번에 와르르 피어나니 보기는 좋지만, 한쪽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벌과 나비들이 개나리에서 개나리로, 진달래에서 진달래로 날아다녀야 수분 활동이 제대로 될 터인데 이
새빨간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량항. 봄바람과 함께 주꾸미가 몰려왔다. 충남 서천군 동백꽃·주꾸미 축제 (3월 18일~ 4월 2일)가 열리는 마량항을 지난 22일 찾아나섰다. 봄 주꾸미도 먹고 동백도 보니, 꿩 먹고 알먹고다. 동백숲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나연옥씨(67)에게 3월에 피는 꽃은 동백이 아니라 춘백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물으니 “꽃은 한겨울인 12월부터 피기 시작하니 겨울꽃 동백이라 부르는 게 맞는 것”이란다. '겨울 동(冬)·나무 이름 백(栢)' 겨울나무 동백이 맞다. 마량면 동백은 천연기념물 169호
380여 년 전 고산 윤선도(1587~1671)는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다섯 친구라 생각하고 오우가(五友歌)를 쓰며, 대나무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은 것은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조선의 학자가 보기에 대나무는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었다. 그 논란은 오늘까지도 이어진다. 나무는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어야 하고 부름켜가 있어서 나이테도 형성하고 몸통이 굵어지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서 목질부가 없고 몸통
지난 2일 전국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영상으로 봤지만,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운동장에 가득 모였다. 2019년 입학식 이후 4년 만이다. 새싹 같은 아이들이 노란 개나리처럼 보였다. 마스크 착용은 학교마다 자율이었지만 마스크 물결이었다. 코로나의 그림자는 아직도 짙었다. 아이들이 서 있는 운동장 한쪽 구석의 화단은 3월임에도 아직 한겨울이다. 하지만 간간이 초록색 풀들이 보인다.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민들레, 질경이, 망초, 냉이 등이다. 새로난 풀들이 아니다. 그들은 꽁꽁 언 얼음 땅에서 초록색 잎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다
수은주가 지난 25일 영하 17도를 넘어서며 언론에선 ‘최강한파’란 단어를 사용 할 정도로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강추위에도 숲속에서 홀로 초록빛을 내며 살아가는 나무가 있다. 다른 나무에 빌붙어서 사는 겨우살이다.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진 겨울에 초록색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간다고 하여 ‘겨울살이’에서 겨우살이로 변했다고 한다, 또는 다른 나무에 빌붙어 겨우겨우 살아간다고 해서 겨우살이가 됐다고도 한다. 겨우살이는 큰 나뭇가지에 빌붙어 양분을 도둑질해가는 기생식물이다. 초라한 기생식물인 겨우살이를, 이유미 국립세종 수목원장
80년대 젊은이들이 많이 부른 노래가 있다. “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다, 아름다운 가사임에도 70년대는 금지곡이 된 적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꾸준한 사랑으로 요즘은 공식석상에서도 불리운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지만, 눈 온 뒤 하얗게 덮인 세상에서 푸르름이 더 돋보인다. 숲 공부를 하다 보니 길을 걸으면서도 여기저기 나무들에 눈길이 많이 간다. 지난 15일 눈이 온 후에는 아파트 주변 화단에 늘어선 초록색 사철나무에 눈길이 멈췄다. 사철 푸른 상록수지만 키도 작고, 형태도 볼품
붉은 나무 주목(朱木).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말들은 많이 듣지만, 천년을 산 주목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오래된 나무들은 주로 높은 산꼭대기에서 살기 때문이다. 정선 두위봉, 태백산, 소백산, 발왕산 등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왜 산꼭대기에 자리 잡았을까?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보면 주목은 어릴 때는 쨍쨍 내리쪼이는 햇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숲속의 그늘에서 적어도 몇백 년은 유유자적한 삶을 이어간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이 수명을 다할 때면 키도 훌쩍 커져 햇빛을 받는 데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붉고 치밀한 목재는 불상을